반도체공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다유전체 박막 연구 세계적 권위자 ‘등극’
자기중심적 연구 경계, 객관성 검증 ‘철저’현 반도체 소자의 발달은 기존의 재료 및 공정을 이용해서는 더 이상 요구되는 성능을 보장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반도체가 집적화됨으로써 생기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유전체에 대한 연구는 현 반도체 공정에서 핫이슈가 되고 있는 분야로, 1년에 수천편의 논문이 쏟아지는 등 세계적 경쟁이 치열하며 기술 발전의 속도도 빠르다. 평범한 수준의 연구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유전박막 연구에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유전박막연구실의 황철성 교수는 초고유전막 및 강유전막에 대한 연구를 통해 SCI 저널에서의 총피인용 회수가 1천여회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젊은’ 과학자이다.발디딜 틈없이 쌓인 서류와 메모지도 올려놓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운 책상. 여느 연구실에서나 늘 보아온 익숙한 장면을 예상하며 황철성 교수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잘 정리된 깔끔한 실내에 연필 하나 굴러다니지 않고 푸른 관엽식물만 한가운데 놓인 탁자를 보며 놀라움을 표시했을 때 황교수는 “성격이 까탈스럽다”며 “비결은 잘 버리는 데 있는데, 정리정돈에 힘은 좀 들지만 오히려 연구 능률을 높이는 데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아침 7시30분경 이 연구실로 출근하는 황교수는 방학기간 중에는 주로 연구실에서의 연구와 실험실에서의 학생지도로 하루를 보낸다. 보통 교수들이 1주일에 한두번 실험실에 들르는 데 비해 황교수는 하루에 오전과 오후 두차례 실험실로 향한다. “다른 교수들에 비해 학생들하고 접하는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학생들은 ‘목동 잃은 양’이라고 할 수 있죠. 지속적인 관심과 지도가 학생의 창의성을 약화시킬 수도 있지만, 제 방식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실험실과 학생들의 연구실을 둘러보며 황교수는 모든 학생과 일일이 그날의 실험과 연구 결과에 대한 상세한 점검과 지도에 몰두한다. “이번 실험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지? 지난 결과와의 차이가 어떤 조건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하나? 놀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이유에 대해 좀더 알아보지.”“이번 발표 논문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수식만 잔뜩 써서 사람들을 현혹하지 말고 실질적인 설득력을 갖는 데이터를 제시하도록 해봐.”황교수의 ‘잔소리’는 연구와 실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깔끔한’ 실험실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청소도 마다하지 않는 황교수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의식도 대학에서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학생들을 지도하던 황교수의 시선이 이상한 미소와 함께 멎은 곳은 실험장비 위에 놓인 라이터. 반라의 여체와 함께 ‘성인클럽’ 광고문안이 박힌 라이터를 들고 라이터 ‘주인’을 추궁하는 황교수에 학생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가운데, 주인을 찾지 못한 라이터는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결국 황교수의 실험실 지도는 연구지도뿐 아니라 학생들의 생활지도까지 이어지는 과정이었다.오후에 열린 유전박막연구실의 세미나 자리. 이 자리에서 석달 간격으로 차례가 돌아오는 발표자는 그동안의 실험 결과에 대해 제시하고, 연구자로서 중요한 발표 기술과 자세에 대해서도 훈련하게 된다. 이날 자리는 DRAM 커패시터 고유전체 박막에 대한 실험 내용. “온도에 따라 유전상수가 어떻게 변화하지?”“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해야지, 엉뚱한 말을 하면 어떻하나?“ 발표자의 답변이 황교수를 만족시키지 못한 듯 질책이 이어진다.세미나 자리에서 주위의 연구자들에게 황교수에 대해 물었다.“한마디로 철저한 분입니다. 수업 시간에 필기할 내용이 머릿속에 완전히 들어 있어 메모지 하나 없이 분필 하나만 들고 수업을 하시는데, 그런 교수님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전공분야와 수업내용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계시다는 것인데, 자신이 철저한 만큼 학생들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교수님 밑에서의 수업이나 연구가 쉽지는 않습니다.”“어린 학부생들하고도 잘 융합하시는 분입니다. 당근과 채찍을 통해 사람을 다룰 줄 안다고 할까요? 학생들에게 투자도 많이 하시는데, 연구실에 돈이 없을 때도 어떻게든 융통해서 학생들의 연구가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해 주십니다. 그 대신 결과는 철저하게 요구하시죠.”유전막 연구논문 ‘고전’ 지위 황철성 교수의 연구분야는 초고집적 메모리 및 SoC 반도체용 초고유전막·강유전막 제조공정이다.현재 반도체의 집적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존의 재료와 공정이 성능보장에 한계를 가져옴에 따라, 기존의 유전체를 유전율이 높은 재료로 대체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한 상황이다. 황교수는 유전율 3.9의 기존 SiO2 유전막의 한계를 뛰어넘는 (Ba,Sr)TiO3와 같은 유전율 500 이상의 초고유전체 박막 공정과 이를 이용한 초고집적 DRAM 소자 적용 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Pb(Zr,Ti)O3와 같은 전기가 꺼져도 기록된 정보가 남아 있는 불활성 메모리용 신강유전체 재료를 이용하는 불활성 메모리 반도체 공정에 적용하고 소자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기존의 박막성장 방법보다 우수한 원자층성장법이 개발돼 적용됐다. 유전체 연구는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며 실제 산업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연구자가 많은 현실에서 황교수는 지난 94∼95년 DRAM 산업이 급부상하는 시기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황교수는 반도체 재료 및 소자 분야 국제학회에서 지금까지 17회의 초청강연을 했고 올해까지 국제학회 초청 강연 일정이 결정돼 있을 정도로 연구 업적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있다. 특히 중요한 업적은 SCI 저널에서의 총 피인용 회수가 1천여회에 이른다는 것이며, 황교수의 주요 논문 중 하나는 120회 이상의 피인용을 기록하고 있어 이 분야의 고전이 됐다. 국내 유명 교수가 평생 약 천번의 인용을 기록하는 데 비해 아직 30년의 연구기간이 남은 황교수의 기록은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또한 공학 분야에서 단일 논문의 100회 이상의 피인용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일본에서도 100회 이상의 피인용 논문은 ‘수퍼스타급’ 논문으로 평가하는 상황이다. 황교수는 지난 2002년 11월 독일 훔볼트 재단이 수여하는 ‘Humbolt research fellowship award with the highest grade’에 선정됐는데, 이와 같은 지원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며, 같은 해 12월에는 부임 5년 이내의 160여명 교수 중 10명이 선정되는 ‘서울대학교 우수 신진 교수상(서울대학교 총장상)’을 수상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및 과학기술부가 공동 주관하는 제7회 ‘젊은과학자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는데, 이 모든 연구결과는 94년 이후 국내에서의 연구 활동에 의한 것이다. 국내파·기업체근무 등 이색경력서울대 교수 중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가 매우 드문 상황에서 황교수는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국내파’ 연구자로서, 국내 연구인력의 해외유출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전범이 되고 있다. 또한 황교수는 우리 사회에서는 드문 기업체 근무 경력의 교수이다. “회사에 있으면 논문을 쓸 기회가 적어 교수로 임용되기 힘든 상황입니다. 제 경우에는 운이 좋은 편이었죠. 95년 고베현 지진으로 일본 업체의 생산시설이 파손돼 DRAM 값이 폭등하면서 삼성이 돈을 많이 벌었지만 기술개발에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메모리라는 게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는 기술개발을 위한 논문 쓰기를 적극 권장했고 이러한 배경이 제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기업근무 경력은 학생 지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인데, 황교수는 “현재 연구의 99%가 실제로는 실생활에서 필요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이러한 연구의 모호함을 극복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한번 해보는 연구가 아니고 양산과 원가, 즉 산업화의 개념을 갖고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또한 산업계와 인맥을 갖게 됨으로써 산학협력이 원활해지는 장점이 있다. 즉 삼성뿐 아니라 기타 장비·소재회사들과의 협동연구와 장비기증이 활발해, 국내 대학 실험실의 장비 수준을 뛰어넘는 실험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산학협력은 학교 연구의 객관성을 보증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 황교수의 의견이다. “업계의 대체적인 연구 방향과 개발계획을 알 수 있어 학교의 연구를 실용적인 관점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계 논문이 보편성과 객관성을 결여하고 특정한 환경하에서의 주관적 연구가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관점은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황교수가 넥타이를 매지 않는 이유황철성 교수의 연구실에는 수준급의 풍경화와 정물화 등 그림 두 편이 걸려 있는데 모두 황교수가 직접 그린 작품이다. 또한 연구실에는 대형 오디오 스피커를 통해 내내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사실 황교수는 미술과 음악의 매니아로 고등학교 시절까지 미대 진학을 꿈꾸는 예술학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전인교육을 모토로 한 교장 덕분에 다양한 동아리가 많았습니다. 저는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데 열중했죠. 아마 그림 실력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음악에 있어서는 하나의 곡을 듣고 작곡가와 곡명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연주가를 알아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예술가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 분석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죠.”예술가의 꿈을 접고 공과대학을 선택한 황교수는 3학년 2학기가 되던 시기부터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공부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고3때처럼 5년을 정신 없이 공부했죠. 실은 오늘도 넥타이를 매려다가 그만두었는데, 넥타이를 잘 매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학원 진학 후 고개를 숙인 자세로 책을 보면서 너무 공부에 열중하는 바람에 척추 변형이 생겨 목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죠.”황교수는 연구의 객관성을 가장 중요한 신념으로 갖고 있다.“과학기술자가 제일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자신의 연구가 최고라는 잘못된 신념입니다. 자신의 연구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산업계의 연구와 다른 학자, 다른 나라의 연구를 끊임없이 조사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학회에서 보면 자기 연구를 발표하고 나면 다른 연구자의 발표에 신경도 안쓰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아예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사실 한 개의 진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99개의 오류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연구가 바로 그 99개 중의 하나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황 철 성·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부교수·삼성전자주식회사 반도체연구소 공정개발팀 선임연구원·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조교·서울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 박사·서울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 석사·서울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 학사 http://www.sciencenews.co.kr/scienews/viewarticle.asp?id=1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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